3. 그리스인 조르바-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이 말은 작가의 묘비명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리 알려지지도 않고 인기가 많은 작가도 아니지만 읽어 보았다.
*처음 부분을 읽으면서는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간파했다고 생각했다. 조르바는 인간의 육체와 욕망을 상징하고 두목은 영혼, 관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을 읽었을 때에는 서로 영혼까지 이해하고 사랑한 두 사람이 보였다.
아! 내게도 나의 영혼을 이해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늦지 않았으리라.
p.53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p.82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그놈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놈이고, 유일하게 내 수중에 있는 놈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p.83
별이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p.92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을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소….. 보여 줄 수 있어요?
우리의 낡은 세계는 구체적이고 견고하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실재하는 세계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을 빚는 재료인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이 순간순간을 견디다 보면 그 끝에 내가 기대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어느 미래에 다다른 순간은 또 다른 현재일 뿐이다.
p.94
별들은 인간에게 무심하고, 잔혹하고, 냉소적이며 무자비했다.
+그렇다. 인간은 대개 ‘신념’, ‘이상’, ‘희망’이라는 별을 바라보며 산다. 그러나 그 별들은 우리 인간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그저 무심하고 잔혹하게 내려다 볼 뿐.
p.99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들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 밖에요.
p.107
악마는 이쪽에서 당기고, 하느님은 저쪽에서 당기지요. 한 중간에서 나는 두 토막으로 끊어지고 말아요.
p.134
인간의 영혼이란 어떤 기후, 어떤 침묵, 어떤 고독, 어떤 무리 속에 있는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p.295
우리의 덧없는 삶 속에서도 <영원>이 있다. 우리로서는 혼자서 그걸 뚫어 볼 수 없을 뿐이다.
p.325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p.389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있기나 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걸까? 우리가 불멸에 대해 꺼지지 않는 갈망을 품는 것은, 우리가 불멸의 존재여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그 어떤 불멸의 존재를 섬겨서가 아닐까?
p.423
인간이라는 불운한 존재는 작고 초라한 자신의 삶 둘레에 난공불락이라고 믿는 방벽을 쌓아 올린다. 그 안을 피난처로 삼아, 삶에 미미한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려 애쓴다. 미미한 행복을 말이다.
죽음은 친숙하고 다정한 얼굴로 내 삶 속에 들어왔다. 마치 우리를 데리러 와서는, 우리가 일을 끝낼 때까지 구석에서 무던하게 기다려 주는 친구 같았다.